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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

여울이의 유치원 졸업식

오늘은 여울이의 유치원 졸업식이 있는 날이다. 


별 것 아니라면 별 것 아닐 수도 있는 날이라는 생각에, 

연구실 이전과 과제 제출일이 밀려있던 차여서, 

'초등학교 입학식에 참석하면 되지'라는 맘으로 

졸업식에 참석해서 여울이가 그렇게 먹고싶어하던 '금돼지 왕돈까스' 사주겠다는 약속을 

쉽사리 깨려하고 있었다. 

내게 중요한 일들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 가족에게 있어 여울이 졸업식만큼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싶었다. 

비록 유치원 졸업식이긴 하지만 

여울이에겐 처음으로 경험하는 졸업식이기에  

어떻게 해서든 참석해야겠다는 맘이 들었다.  


하필 오늘 오랜만에 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래도 비는 워낙 좋아하기에 기쁜 마음으로 나섰다. 

  


졸업식에 참석해보니 발 디딜틈이 없었다. 

아빠가 별로 없을 것이라던 아내와 나의 기대는 여지없이 빗나가고 말았었다. 

뒤에는 발 디딜틈도 없고 어찌하다보니 여울이의 유치원 교실을 통해 졸업식을 엿볼 수 있었다. 

여울이 바라기인 노을이는 보이지도 않는 누나를 한참이나 찾고 있었다.  





졸업식에선 여울이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다. 

우리 부부의 생각과 달리 다른 부모들은 자리를 가득 채울 뿐 아니라 졸업식에 멋진 꽃다발도 준비했었더랬다. 


여울에겐 얼마 전 재롱잔치 때 주었던 종이 꽃다발을 깨끗이 보관했다가 다시 주었다.  

다행이 여울이도 싫어하진 않았다. 

대신 아내는 초콜렛과 사탕 등이 담긴 손수 만든 목걸이를 친구들에게 나눠주라며 여울이에게 전해주었다. 

여울이는 친구들에게 목걸이를 주며 사진을 찍자고 요청을 하기도 하고, 

사진을 찍자고 요청을 받기도 하였다.  

 


볼에 살이 통통하게 오른 여울이. 

작년 편도수술 후 짧은 기간에 체중이 20%나 늘었다. 지나가다 보았던 돈까스집을 보며 체중을 조금만 빼면 저기서 외식을 하자고 했었더랬다. 물론 그 후로 더욱 통통해져서 이젠 멀어져버린 돈까스.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 

원장선생님께서 부모님의 은혜에 늘 감사해야 한다며  

이어 바로 던진 질문.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에요?" 

대부분의 아이들은 엄마, 아빠라며 목소릴 높이고 있을 때에 


멀리 보이는 여울이는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치고 있었다. 


피식 웃음이 났다. 



여러 의미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나는 저 생각에 전적으로 동감한다. 

여지껏 지켜본 여울이는 늘 자기 중심적이었다. 

부모의 품에 있을 땐 문제가 되지 않지만 

점차 다른 사람들과 생활할 땐 어떻게 하려나 염려가 되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생활을 하며 

여울이에게 저런 면이 있다는 걸 선생님께 이야기 드리니 의외란 반응이다. 

친구들에게 상당히 사교적이란 말을 들었다. 


첫째의 성격이 강하다보니 둘째는 늘 눈치를 보며 산다. 

누나의 구박을 한 몸에 받는 노을이는 누나의 구박에 아랑곳않고 

누나의 관심을 얻기에 바쁘다. 


태생적으로 남을 배려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나 생각이 들지만 

사실 내심 걱정되는 쪽은 노을이다. 늘 남에게 배려를 통해 맞추려고 하다보니 

자신의 욕구는 늘 뒷전으로 둔다. 더러 안쓰러 보일 때도 있다. 


아비로서 염려되는 바는 아이들이 자라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자신의 욕망대로 살아낼 수 있는 

건강한 모습이 되어야 할 때 여울이는 안에서부터 꽉 찬 모습일 수 있지만, 

노을이는 그렇게 되지 못할까 하는 염려를 해본 적이 있다. 


마치 작은 것에 흔들리고 마음이 불안해지지 않을까하는 

자신이 중심이 되지 못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사실 나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어른들이 

아이들이 그렇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그래 니 생각에 동감한단다.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은 부모님이 아니라 너 자신이야. 



체중감량 약속으론 이 돈까스를 먹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졸업할 때 사주마했다. 

별 것 아닌 돈까스지만 여울이 노을이에겐 별 것이다.  





아내와 노을이. 아내는 아마 자기 사진을 올린 걸 모를테지만 어차피 볼 사람도 몇 없을뿐더러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아이들과의 기록을 더 남기는 것이 훗날 아이들에게 우리에게 소중한 추억이란 생각에 사진을 올린다. 

그래서 내 사진도 올렸다. 



졸업 축하한다. 여울아 

봄 방학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저녁이되자 벌써 유치원 친구들이 그리운지 방학이 이르다는 여울아. 

앞으로도 즐거운 날들이 널 기다릴테니 

즐거운 마음으로 하루를 맞이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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