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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아이의 아빠

여울이의 이빨 II

여울이의 젖니가 흔들리던 날 밤에 오랜 친구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
아버님께서는 몇 개월동안 말기암으로 투병 중이셨기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입원해 임종을 준비하고 계시던 상황이었다.

부고를 듣고 다음 날 조문을 갔다.
늦은 밤에 임종하셨기에 실제 장례는 이틀간 치뤄졌다. 오랜 단짝 친구이기에 발인과 추모공원에 모실 때까지의 일정을 함께 했다. 장례식의 전 과정을 치뤄본 적은 친구도 나도 이번이 처음이었다. 언제나 밝은 모습을 보여주던 친구는 애써 슬픔을 참아내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화장이 시작되면 어떻게 견뎌낼 수 있을 지 걱정이 되기도 한다며 애써 쓴 웃음을 지어 보였다. .

마지막 날 친한 친구 여럿이서 관을 들고 장례지도사의 안내에 따라 화장터에 다다랐다. 예의바르지만 무덤덤한 표정의 장례지도사들의 안내를 받아 관을 인계한 후 대기실로 가서 모니터를 통해 화장 절차를 지켜보게 되었다. 감정을 절제하던 친구는 좀 당황한 것처럼 “뭣이 이리 황당하게 끝나노, 이게 정말 마지막인가”라며 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을 황당해했다. 곧 모니터를 통해 화장을 알리는 불이 들어왔다. 친구는 허탈해하며 “난 왜이리 바보같노”라며 참았던 울음을 터트렸다. 친구는 아버지와의 마지막 작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아버지를 목놓아 부르며 아버지께 인사를 드리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참아왔던 고마움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한 죄송함을 표현할 마지막 기회를 놓친 것이다. 친구의 울부짖음에 나와 다른 친구들도 모두 눈물을 흘렸다.

화장을 마치고 추모공원에 모시는 과정에서도 격식과 예의는 갖추었지만 유가족의 감정을 살펴줄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아버지의 유골을 봉안하면서도 그 앞에서 준비한 단촐한 차례상을 차릴 기회는 제공되지 않았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기에 그러한 조처가 납득되지 않는 건 아니었지만, 유가족의 감정을 좀 더 배려해줄 수 있는 여건이었다면 낫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다른 친구는 소도시의 경우에 유골함 앞에서 재를 지내게 해준다는 말을 전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기에 그러했으리라.

친구 아버님의 장례절차를 모두 마치고 오는 길에 아내가 여울이의 아랫니 두 개를 모두 뺐다며 소식을 전해온다.

이틀이 채 되지않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한다.

이 두 가지 사건을 지나는 생각은
‘시간은 우리를 기다리지 않는다’
불변의 진리이다. 이 진리를 짧은 기간에 가슴에 와닿게 느낄 수 있었다. 언젠가 이런 시간이 올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현재의 시간에 충실하지 못했던 나와 나를 닮은 소중한 친구. 늘 가슴 속에 지니는 말이 “빗질을 할땐 빗질을 하라”는 선문답이면서도 그것을 실천치 못하는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머물러 있는 것은 없다. 눈을 뜨자마자 달라붙는 성가신 아이들은 곧 자라서 날 귀찮아 할 것이고, 연로하신 부모님도 언제까지 내가 고마움과 감사함을 표할 때까지 계셔주실 지 모를 일이다. 좀 더 지금에 충실해야겠다.



#지금에깨어있기 #빗질을할때는빗질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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