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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통해

카파도키아에서 3

모든 것이 아름다울지니

 

by 호랑이 Jan 26. 2016

 

 

 

마침 나이 많은 직원이 자기 친구네 버스 여행사(여기는 큰 터미널에 수십 개의 각기 버스 여행사가 간판을 걸고 각자 버스 브랜드로 영업하는 구조다)에 말해 목적지로 데려다준다고 한다. 그러면서 혹시 카파도키아에서 다른 투어들 계획은 없냐 묻는다. 뭔가 호갱이 되는 퍼스트 클래스를 탄 듯한 느낌이다. 하지만 다른 옵션이 없다. 믿고 따르는 수 밖에.

 

 다행히 한 시간 후 출발하는 네브쉐히르행 버스가 있었다. 70리라면 2만 8천 원 수준. 저렴한 정가의 티켓.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지금 내가 숙소에 앉아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그분 덕분이다. 귤레 귤레(감사합니다.)

 

 각 버스 여행사마다 1층은 매표소이고 2층은 버스를 기다리는 승객을 위해 화장실이 딸린 휴게실을 제공한다. 여기는 유료 화장실이 많은 곳이기에 무료화장실은 참 반가운 존재이다. 담배연기 가득한(터키 성인 남성의 99%, 여성도 다수가 담배를 핀다고 들었다) 2층으로 올라가니 티비를 보던 사람들이 모두 시선을 돌려 나를 빤히 쳐다본다.

 

 여행객에게 호감을 가진 전형적 터키인의 관심이다. 터키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친절하기로 유명하다. 특히 이들은 한국인들을 형제의 나라에서 왔다고 반겨준다. 터키인들의 관심이 싫지 않다. 하지만 다대일 대응은 난감하다. Whatever 난 화장실부터 갔다. 양치질도 못한 지 꽤 오래되어 좁은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한다. 두꺼운 배낭은 누가 가져갈까 둥에 업쳐매고 앞에는 자주 쓰이는 물건만 담은 숄더백을 매고 좁은 화장실에서 양치질을 하는 게 여간 곤욕스러운 일이 아니다. 세면대 앞에선 바로 서기조차 불가능해 옆으로 서서 양치질을 한다. 화장실에서 양치질이라... 이 무슨 품위스런 행동이던가? 더군다나 독일에서의 세미나 참석을 위해 양복 차림 아니던가? 구두에 양복 차림은 캐리어에 넣기 애매하므로 일단 입고 왔다. 여튼 이 상황이 우습기도 하지만 적응하기로 했다. 터키에서의 나는 배낭여행객 본분의 모습 아니던가. 애써 웃으며 양치질을 하고 있는데 문이 열린다. 아뿔싸~ 다시 모든 사람들이 말없이 나를 쳐다본다. 제길슨!!!

 

 

 버스정류장에서 먹었던 케밥. 어디서든 볼 수 있는 케밥을 보며 터키에 도착한 것을 실감했다. 12리라. 4800원 정도.

터키에서 버스는 상당히 추천할만한 수단이라더니 그 말이 틀림없다.

 

 상당히 높은 지상고를 가진 이 버스는 내가 여지껏 타본 그 어느 버스보다 고급스럽다.

유럽권이라 대부분 벤츠 등 상당히 좋은 버스들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내 버스만 좋은 게 아니라 대부분 그런 것 같았다. 비행기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의 좌석. 일단 뒤로 젖혀지는 것 자체가 천국이다. 내 좌석을 찾아가려니 좌석번호가 보이질 않는다. 위에도 좌석에도. 한참을 두리번거리며 다니니 누가 도와준다. 그런데 그 자리엔 장년의 남성과 네댓 살 정도의 남자아이가 앉아있다.  남자가 뒤에 앉아도 된다고 한다. 뭔가 이상한 듯했지만 여기 분위기가 그런가 싶어서 뒷좌석에 자리 잡았다. 나 역시 저 꼬마 손님에게 자리를 빼앗고 싶지 않았다. 자리를 잡고 인사를 나누고 근데 다른 자리에 앉아도 되는 분위기냐 물었더니 오케이 하면서 애를 번쩍 들어 옆자리에 앉은 두 명의 엄마와 할머니 무릎 위에 올려두고 앉으라고 한다. 커뮤니케이션 실패다. 아니라고 설명하고 아이를 다시 제 자리에 앉혔다. 유럽권이지만 터키인의 상당수는 영어를 하지 못한다. 자국에서 자국어를 쓰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내 여행은 좀 더 힘들어질 것 같다. 호주,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영어가 공용어화 되어 있는 곳에서 다니던 습관에 빠졌던 것 같다. 

 

 

상당히 깨끗하고 고급스러운데다 저렴하기까지한 버스.

 12시간의 버스 탑승이지만 정말 따뜻하고 아늑했다. 멀미 때문에 장거리 버스를 잘 타지 못하는 편인데 여기 버스는 차원이 다른 듯하다. 그래서 사람들이 터키 버스 여행을 극찬했구나. 그리고 버스에서 항공기처럼 때때로 간식을 제공한다. 음료를 제공하고 후엔 간식. 커피도 타서 준다. 운전사 외에 별도의 승무원이 탑승하여 승객들의 편의를 돕는다. 친절하고 부지런하다. 내 옆의 승객이 목적지에 도착해도 자고 있으니 깨워주기까지 한다.

 

 

케밥의 나라 터키답게 이런 버스정류장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불교적 가르침에서 내가 원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그렇게 일어나야 할 일들이었기에 생겨났다고 말한다.

 

운명이 정해져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일이 생겼다고 해서 거기에 연연하여 사로잡히지 말라는 뜻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때 그랬더라면 달라졌을까라고 집착해봐야 되돌릴 수 없는 일 현재에 만족하고 충실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때의 일은 다음번 교훈이 되면 충분하다. 설령 내가 못 미쳐 실수가 반복된다면 그건 아직 나라는 존재가 그 정도임을 깨닫게 해주는 좋은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러함을 통해 현재에 만족한 삶을 살면 그만이다. 모든 것이 마음 가짐에 달려있다는 뜻의 일체유심조는 내가 가슴에 지니고픈 가르침이다.

 

 이번 여행을 통해 배운다.

앞으로도 더 많은 변수와 난관들이 있겠지만

어차피 그러함들은 인생에 있어 피할 수 없는 것들 아니겠는가?

고(苦)가 곧 생(生)이라고 했다.

(苦)와 행(幸)이 다르지 않다.

모든 것이 마음에 달려있다.

 

 두 아이의 아빠. 한 여자의 남편인 나는 더 성숙해져야 한다. 더 유연해지고 의연해질 필요도 있다. 오랜만의 여행을 통해 스스로를 살필 수 있길 기대해본다. 참으로 행복한 카파도키아의 첫날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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